태그 : 국가주의

경험철학적 시각에서 봤을 때 대한민국은 확실히 패망의 카운트다운으로 접어들었다....

"혈세로 키운 은행, 경쟁력 없이 돈놀이만 혈안"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포털에 떴다. 뭐 오래전부터 쭉 있어왔던 얘긴데 왜 지금와서 저렇게 새삼스레 떠들어대는지...하긴 이런 모습이 언젠가부터 분명해져버린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 아니었나. 삽시간에 달아올랐다 삽시간에 얼어버리고, 대책없는 변덕은 연일 죽끓듯 하며...하루하루가 소잃고 외양간 고침의 연속인 지구상에 유래가 없는 환상적인 나라... 대KHAN민국!

확실히 나라에 망조가 든 것 같다.
온건좌파적 국가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나...
우리나라에 다시금 전체주의가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생각이 정리가 안돼 '온건좌파적 국가사회주의'라는 요상한 표현을 내뱉어버렸는데...많은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나 역시도 그냥 특정한 사회를 바라보는 정치적인 시각이 다양한 것일 뿐이다.

나의 정치 성향은 매우 단순하다. '개인'을 최우선적인 가치로 여기는 건 맞지만, 동시에 휴머니즘을 표방하기 때문에 무정부주의는 원치 않는다. 내 생각에 무정부주의는 그야말로 철딱서니 없는 낭만주의의 극치다. 물론 내일 죽는 한이 있어도 무정부주의자로 살겠다는 사람은 민주주의의 원칙 아래 당연히 놓아주어야 하겠지만....

여튼...다시 앞으로 돌아와서. 어쩌면 이상적이다고 할 수 있을 그런 모습의 전체주의가 대두돼버렸으면 좋겠다.

플라톤은 흔히 전체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그가 원시적이기 그지 없는 스파르타를 이상적인 정치체제로 꼽은 이유를 고찰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플라톤은 민주정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이었다. 왜냐면 그는 민주주의의 구성원인 시민 한명한명의 지적 수준이 아주 우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멍청한 사람들이 정권을 잡으면 그 집단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불보듯 뻔한 일. 그냥 순수하게 생각하면, 플라톤의 이러한 비민주적 발상은 전혀 지탄받을 성질의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바로 플라톤이 멸시한 그 시민들과 정확히 일치하는 존재들이라고 확신한다. 그렇다. 현재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일체의 정치적 권리도 소유할 자격이 없는, 소란스럽고 우매한 군중들인 것이다.

함께 사는 사회 아닌가. 함께 사는 이 사회가 후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면, 구성원 모두의 희생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들의 현실은 어떤가. 오직 본인의 생존이 최우선의 목적일 뿐. '희생'은 커녕 공생의 기본적인 원리조차 인식의 밖에 있다. 옆사람이 나와 함께 사는 사람, 나와 한 몸임을 전혀 깨치지 못하니 매 순간 자살적인 경련을 일으킬 뿐이며, 그러한 경련을 감지하는 신경조차도 마비가 돼버려서는...매순간 팔다리가 뒤틀리며 입이 돌아간다. 똥구멍에서 힘찬 설사가 쏟아져나와도...눈은 멀어버렸고 코는 막혀버렸으니 어떻게 뭘 수습할 재간이 없다.

사태가 겉잡을 수 없게 됐을 때는 도박을 거는 수밖에 없다. 불확실하지만 혹시 모를 어떤 가능성에 올인을 하느냐, 아니면 이대로 썩어서 문드러지느냐. 나는 도박을 했으면 한다. 능력있는 한명의 독재자를 추대해서, 당분간은 나라를 군대식으로 굴려가는 거다. 국가 구성원 모두에게...공공을 위한 희생을 강제하는 것이다. 그래. 권유가 아닌 강제. 그리고 그러한 이타적 희생들을 강제적으로 끌어모아서는...나라의 기틀을 다시 잡는 것이다. 그런 다음...다시 예전의 민주주의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물론 이 도박이 잘못돼서 민주주의로 되돌아오기는 커녕 끔찍한 전체주의로 끝나버린다면...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도박을 했으니 위험은 감수해야지.

까짓거 꼬우면, 투표를 해서 계약을 맺는 형태로 할 수도 있다.

"특정한 시점까지 나의 이기적인 욕심은 일체 부리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의 모든 개인적 행동들은 오직 공공을 위해서만 하게 될 것을 맹세한다!"

뭐 말하자면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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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이런 류의 주장을 아주 되먹지 못한 넌센스로 치부할 테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만약 그렇게 치부하는 그 당사자가 무정부주의자라면 모르겠지만, 사회라는 존재의 가치를 최소한도로라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다. 왜냐면 사회가 붕괴한 이후의 개인은 그 생존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의 필요를 최소한으로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사회의 붕괴를 막아야만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자신의 권리를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사회 재건에 힘을 보탤 것이냐, 아니면 사회의 필요 없이, 타인의 도움 따윈 전혀 없이 혼자서 살 길을 스스로 찾아나가거나.
 
모두의 생존을 위해 잠시 전체주의로 갔다가, 목적을 성취한 뒤에 다시 원래의 민주주의로 되돌아온다....

"말이야 쉽지"라고 비꼬는 인간들이 태반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현재도 '사회적 합의'라는 양보의 미덕을 통해 적지 않은 사회문제들을 해결해가고 있다. 규모가 조금 클 뿐, 이렇게 '합의된 전체주의'도 굳이 잘못된 발생이라고만 할 순 없는 것 아닐까? 모두의 자율적 판단이 전제된 계약적인 형태로서의 전체주의.

비록 합의의 형태를 띤 것은 아니었지만...일본의 모습을 보면 앞에서 논의된 것과 관련한 작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일본국민들의 생활 속에는 여전히 전근대적 전체주의가 숨쉬고 있지만, 그런 와중에도 일부의 사람들은 우리보다 몇배 앞서나간 민주주의 사상을 실험/고취하고 있다. 일본은 정치 사상의 조류가 우리보다 훨씬 다양하다. 편협하기 그지없는 우리 언론으로 볼 것 같으면, 일본의 극우주의 정파들에 대해서는 연일 개떼같이 보도를 해대면서도, 진보 계열의 최전선을 걷고 있는 단체들에 대해서는 일고의 언급도 안한다. 한국의 진보 진영보다 훨씬 혁명적인 사상의 단체들이 즐비한데 말이다...

어쨌든 일본은 전체주의를 통해 물직적인 부를 획득했고, 그렇게 획득한 부를 통해 다시 사상적인 자유, 생활속의 다양성을 꾀해 갔다. 때문에 아직 전체주의의 먹구름을 걷어내지 못했음에도, 땅 위에서는 제법 깨끗한 새싹들이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새싹들 중 일부는 풍요로운 과수원으로 변혀 있다.
...우리에게도 물론 이런 과수원은 있지만, 그 수치가 일본의 그것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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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 나와 내 가족만의 부귀를(절대 '생존'이 아니다!!!) 최우선으로 삼은 결과, 제무덤을 스스로 파는 어이없는 비극을 쓰게 됐다. 자기의 손과 발이 옆사람과 연결이 돼있는데도...시원한 바람한번 쐬어 보겠다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다....

by 냄비국물 | 2007/11/24 01:47 | 로맨스와 판타지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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