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밀라, 처음 뵙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문화와 관련된 분야만 제외한다면, 대한민국은 선진국의 '반열'이 아닌 선진국 그 자체에 올라섰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믿는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나도 그렇고 내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우리나라를 선뜻 선진국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가 않은 것 같다. 아마 '선진국'을 정의함에 있어서 '문화'라는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핵심적이라는 그 말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말을 그대로 따른다면, 한국은 확실히 선진국이 아니다. '문화'라는 것은 말 그대로 그 범주가 엄청난데, 이 엄청난 범주들이 요구하는 다양한 조건들을 대한민국은 거의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목표로 하고 있는 선진국들에 비하면 말이다. 아니 오히려, 우리가 후진국이라고 부르는 나라들에 비해서도 훨씬 뒤떨어지는 '문화'를 보여주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그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방송과 관련된 각종 추태들이다.

SBS의 주말 오락프로 [일요일이 좋다]가 가을철 새단장을 하면서 '사돈 처음 뵙겠습니다'라는 코너를 신설했다. 현장 리포트와 스튜디오 토크 방식이 엮여 진행되는 이 프로는 인기 MC 남희석이 마이크를 쥐고 있으며 한국의 농촌으로 시집 온 외국인 며느리들을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 삼는다. 그리고는 그들이 한국에서, 그것도 농촌에서 '외국인 며느리'로서 겪는 시집살이의 애환이라든지 고충 같은 것들을 짐짓 비장한 톤으로 그려낸다. 스튜디오로 장소가 옮겨지면 몇분의 토크쇼를 통해 앞에서 나왔던 절절한 스토리들을 다시 한번 반복한 다음, 결혼식 이후 일면식 한번 이루어지지 않은 양가대면을 '감동적으로' 시켜 준다. 이것이 SBS라는 방송국이 야심차게 새단장한 주말 핵심 프로그램 중의 하나다. 

하지만 겉으로는 얼핏 그럴싸해 보이는 이 프로그램은, 앞서 말한 대로 우리 문화의 후진적인 일면을 너무나 상징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 시청자와 프로그램 제작자, 즉 수요자와 공급자가 자신들의 문화적인 수준을 스스로 하향평준화시켜서는, 거기서 또 자기들만의 기막힌(?) 놀거리를 합작해 내는 것이다. 그렇다. 프로그램을 만든 피디와 진행자의 수준, 그 수준에 그대로 맞추어 연신 구정물 같은 웃음을 쏟아내는 시청자들...그들 모두가 대한민국이라는 이 저질스런 문화시장의 '주인공'들이었던 것이다. 

이 날 출연했던 베트남 며느리...그녀를 만나기에 앞서, 남희석이 그 동네에 있는 이웃 할머니들과 잠시 이런저런 환담을 나누는 장면이 있었다. '나도 며느리가 베트남 앤데...'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 주고 받는 그런. 그런데...문제의 할머니들이 별 생각없이 내뱉은 말들을, 이 피디라는 작자는 자기도 그만 '생각없이' 담아서 내보내고 만 것이다. 할머니들께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도 베트남 며느리를 얻었거든요? 그런데 자기들끼리 만나면 뛰디디뛰디디 하고 그러면서 말을 막해요. 그러면..." 

이 부분에서, 시청자들의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스튜디오에 있던 시청자들의 웃음이었는지 아니면 시트콤처럼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삽입한 웃음소리였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 정체가 무엇이었건 간에 이것은 매우 부끄럽고 저질스런 장면이었다. 다른 나라 말을 '뛰디디뛰디디'라는 비하적인 의성어로 밖엔 표현할 줄 몰랐던 그 할머니의 수준하며, 또 그런 낯뜨거운 장면을 편집해내기는 커녕 웃음소리까지 삽입했던 피디의 수준하며... 어쩜 저렇게 원시적인 장면이 주말 저녁 시간대에, 그것도 전국적으로 전파를 타게 되는 것인지 나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뭐 농촌에 사는 노인 분들이야 외국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부족할테니 그런 말실수를 어쩌다 할 수 있다 쳐도...최소한 피디는 좀 달라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사소한 디테일에서도 문제점을 허다하게 노출시키는 인간들이, 프로그램의 취지는 또 도덕적이고 훈훈한 것들로 잡아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늘어나는 국제결혼, 외국인 며느리 10만 시대,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국경을 넘어 맺어진 가족...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 멀리 있는 사돈...국내 최초 사돈 만남 대 프로젝트!"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그것을 실행하는 과정에 있어서 당사자의 기분이 상하게 되면 그 취지는 시도가 되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를 낳게 된다. 구도를 바꿔보자. 한 한국인 여성이 독일로 시집을 갔는데, 시집 간 그 동네의 노친네들이 한국말을 두고 '띵뚱땡뚱' 뭐 이러면서 멸시섞인 흉내를 낸다면? 포털 사이트의 해외 관련 게시판은 아마 비분강개하는 한국인 네티즌들로 인해 몇초 만에 따운이 될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얼마나 차별적이고 무례한 것인지 우리 한국인 본인들은 아무로 인식을 못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내뱉은 할머니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그 부분에 웃음소리를 삽입해 보완(?)작업까지 한 프로그램 담당자들...그리고 그런 부분을 전혀 문제점으로 끄집어내지 못하는 모티터(monitor/시청자, 언론)들... 이는 결국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우리들 모두의 인식 체계가 아직 '선진국'이 요구하는 그 수준에 철저히 뒤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 내는 외국인 관련 프로그램은, 내 시각에서는 아무리 봐도 눈가리고 아옹일 뿐이다. 취지가 좋건 나쁘건 간에, 외국문화에 대한 인식 자체가 아직 외국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할 만한 자격에 도달해있지 못하기 때문에, 콩으로 죽을 쓰건 옥수수로 죽을 쓰건 결과적으로는 위선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있는 것이다. 

남희석이라는 동일 인물에 의해 '국영방송'에서 진행되는 외국 여성들의 토크쇼. 어제는 자밀라라는 우즈벡 출신의 여성이 뉴페이스로 등장해 또 한번의 히트를 쳤다. 이제 뭐 취지고 나발이고 볼 거 없다는 피디들의 '진짜 취지'가...만천하게 공개된 것이다. 시청률만 올려줄 수 있다면 이제 한국에서 하루를 살건 십년을 살건 그런 건 문제가 안 되는 것이다. 자밀라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거의 미수다가 오픈한 이래 최강의 열기가 아닐까 싶다.  

현대문화의 핵심 분야라 할 수 있는 방송에서 우리 한국인들이 보여주는 모습들...언제나 생산적인 대화보다는 시각적인 쇼를 앞세운다. 제작자와 소비자 모두. ...그들은 정말...매번 그렇게 떠들어대는 것처럼...세계를 향해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by 냄비국물 | 2007/11/15 01:44 | Physical Beauties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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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바나나무스 at 2007/11/15 04:57
방송국피디............정말 한번밖에 같이 일해본적없지만 다시는안하고싶었음........

지방의 MBC방송국 피디란 사람에게 청소년 토론프로그램 앞부분에 들어갈 캐릭터를 디자인해달라고해서 그려줬더니

계약서도 없고~구두로만 잘부탁한다며 다음에 더큰일을 맡길테니까 어쩌고 할때부터 이상했지만....

몇달이 지나도 돈을줄 생각을안하고...

계속 방송에서 그 캐릭터를 써먹는겁니다~(그리고 그것도 원래만들어준캐릭터는 안쓰고 샘플로준캐릭터시안중에서 맘대로하나뽑아서)

참다못해서 방송국게시판에 캐릭터 무단도용으로 고발하겟다고하자 그제서야 부랴부랴 입금하겟다는연락이..........

방송국피디라는사람이 저작권개념도 없고 아무튼 다시는 방송국하고 일안하기로했어요
Commented by 실베스테르 at 2007/11/15 15:23
방송국의 천박함이 선진국이냐 아니냐의 지표가 되나요? 어느나라나 천박한게 방송국인데
Commented by 時水 at 2007/11/15 16:56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죠 뭐.
Commented by 스칼렛 at 2007/11/16 15:40
전체적인 글의 요지에 공감합니다.
그런데 KBS는 일단 공영방송이에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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