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19일
배구 한일전 완패를 통해 본 한국 사회의 현실...
언제고 '쪽바리'라며 업신여기던 일본한테, 힘 한번 못써보고 0-3으로 완패했다. 승부 자체에 대해서야 뭐 이런저런 말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이젠 좀 다른 얘기들을 해보고 싶다. 다들 지겹지도 않을까.
뭐 뻔하다. 세대교체 실패론부터 시작해서 한국 배구계의 무능한 행정, 선수관리 부실, 빈약한 팬층, 선수들의 정신력 해이... 수십년 전부터 있어왔던 얘기들이, 아마 한 삼십분 뒤면 포털사이트 스포츠뉴스 란에 빠지지 않고 게시가 될 것이다.
이번 월드컵 대회에 참가한 우리 선수단은 명실상부한 A급 대표팀이 맞다. 부상 혹은 개인사정으로 인해 빠진 중량급 선수가 있다 하더라도, 그게 변명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선수 구성이 젊은 대학생 위주로 돼있다 하더라도...그건 팀을 그렇게 꾸린 감독과 배구협회, 더 나아가서는 우리 한국인들 모두의 '선택'이다. 그렇다면 결과가 나쁘더라도 받아들이고 자성하는 자세부터 먼저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많이 좋아졌다고는 느끼지만 아직도 나는 암암리에 존재하는 한국인들의 '변명본능'을 심심찮게 발견한다.
"우린 원래 능력있는 사람들인데 지금 잠시 상황이 안좋아서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가 나오는 것일 뿐"...이라는 원인모를 '자신감'을...다들 갖고 있다. 언젠가는 본실력을 드러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이런 문제의 '기대감'이 실은 완벽한 허구라는 것이 요즘엔 매우 빈번하게 증명이 되고 있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대한민국을 구성하는 전 분야에서 말이다. 삼성이 우리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 줄것이다, 일단 정권 바꾸면 나라 살림 좀 나아질 것이다... 다들 막연한 기대감만으로 뭔가를 쉽게 믿어버린다. 
삼성같이 불투명하기 짝이 없는 기업이 도대체 세계 시장에서 얼마나 더 경쟁력있는 기업으로 군림할 수 있을까? 경제정책 검증은 커녕 지도자로서 최소한의 도덕소양도 갖추지 못한 이명박 이회창이...과연 어떻게 노무현의 5년을 손쉽게 뛰어넘을 수 있을까?
그저 '바꾸면 되겠지, 바꾸면 되겠지'하는 막가파식 마인드들 뿐이다. 뭐 대충 안봐도 시나리오가 그려진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됐다...그런데 이게 뽑아놓고 보니 경제도 생각보다 똑바로 못굴리고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다른 문제들이 너무 많다...저놈 좀 어떻게 조지는 방법 없을까...어, 그러고보니 몇년 전에 대통령을 실제로 탄핵한 적이 있었내? 좋아 이명박도 탄핵으로 찍어내고 그자리에 다른 대통령 앉히자...
이런 시나리오가 없으리라고는 전혀 장담 못한다. 그런데 이게 참 난감하다. 자격없는 대통령을 국민의 힘으로 조지는 건 좋은데, 사실 정치인을 조지는 작업은 선거를 통해서 하는 것이 정당하다. 만약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뽑혔는데 뒤에 가서 맘에 안든다고 탄핵같은 방식으로 우리 스스로의 결정을 부정해버린다면...어떤 것도 일이 진행이 될 수가 없다. 나라는 원칙없는 파퓰리즘에 직면할 것이며...정국은 연일 남아메리카 같은 불안한 상태로 변하게 될 것이다...
이명박이 대통령 돼서 정말 헌법에 명시된 그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은...그에게 탄핵같은 부끄러운 방법으로 앙갚음을 해서는 안된다.
배구 얘길 하다가 갑자기 정치 얘기로 빠져버렸내...
우리를 0-3으로 완패시킨 일본 팀에는 '오기노 마사지'라는 핵심 선수가 있었다. 그는 나이 서른인 내가 중학교 시절부터 봐왔던 인물이었다. 처음엔 동명이인이려니 설마설마 했었는데...얼굴이 무척 낯이 익은 데다가...곧 "그의 나이 서른 일곱입니다"라는 해설자의 말이 들려와서 나는 마침내 이 인물이 내가 알던 그 인물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째 상황이 좀 언짢은 것이...오기노 선수의 나이를 알려주는 그 해설자의 음성이 낯이 익은 것이...경기가 끝나고 그의 얼굴을 확인하니 글쎄...김세진 선수가 아닌가.
주지하다시피 오기노는 그 유명한 '나카가이치 세대', 즉 우리 식으로 치면 '장윤창 세대'다. 김세진은 그보다 5년 정도 더 늦은 세대였다. 실제 나이도 오기노가 김세진보다 네 살 더 많다. 그런데 오기노는 2007년 배구 월드컵에서 일본팀의 주전 선수로 활약하고 있고, 김세진은 TV로 중계되는 그 경기의 해설자로 활약(?)을 하고 있다.
한국 배구를 중흥시킨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우리 위대한 김세진씨를...까려는 게 아니다. 그냥 한일 양국 배구계의 현실을 말하는 것일 뿐이다. 한 일년 정도 전에...신진식 선수가 은퇴를 하니 마니 삼성 측과 옥신각신 하다가 결국 은퇴를 하고 마는 불상사가 있었다. 신진식 본인은 현역 선수로 계속 활동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삼성은 납득하기 힘든 여러가지 이유를 들먹이며...결국 그를 은퇴시키고 말았다. 다른 팀으로 가서 우리팀 해코지하지 말고 그냥 돈 많이 줄테니까 여기서 끝내라...아마 이런 이유였을 것이다. 삼성은 언제 어디서나 일처리하는 방식이 이렇게 한결같다. 정말 단순하고 편해서 좋다. 나도 삼성맨들처럼 인생 그리 단순하게 한번 살아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여튼 한국 배구계는 토양이 너무 척박해서 선수들의 현역 수명이 무지하게 짧다. 당최 서른 둘을 못넘긴다. 최근에 와서는 장윤창 최천식 시절보다 오히려 더 짧아진 것 같다.
반면...서른 일곱이 돼도 자기관리만 확실히 해주면 언제든지 대표팀 주전으로 활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일본의 배구 시스템... 물론 우리도 민주국가인 관계로 본인의 실력만 받쳐준다면...기회를 차단한다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하지만 신진식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그건 말 그대로 원칙만 그럴 뿐, 현실적으로는 전혀 그렇지가 못한 것이다. 한 사람의 숭고한 자유의지를 돈으로써 종용하여 좌절시켜버리는 소속팀, 그리고 선수를 보호해줘야 하는 본연의 직분은 깡그리 망각한 채 오히려 기업 입장에 서서 선수를 회유하기에만 여념이 없는 배구 행정가들...
일본의 배구계의 시스템 자체를 부러워하는 게 아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여러 방면에서 토양과 저변이 두텁기 때문에...그들이 일궈내는 각종 성과들을 단기간에 따라잡으려고 하는 것은 아주 괘씸한 심보다. 그냥...있는 것만 제대로 잘 굴려도 지금보다는 훨씬 잘 되지 않겠냐는 그런 생각이다. 있는 걸 잘 굴리는 것, 그거야 말로 정말 지혜로움의 상징일 테니까.
...특정한 효용을 아무런 희생도 없이 뽑아내려는 저질스런 도둑놈 심보가...나라 전체에 걸쳐 아주 만연해 있는 것 같다. 회사 가서 일은 않고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서 주식 시세표나 족치고 바라보는 사람들...정말 하염없는 인생들이다. 한국에서 돈 좀 가졌다는 사람들은 당최 돈놀이 밖엔 할 줄 아는 게 없는 것 같다. 돈 불리고 불려서 백만장자 됐다 치자...그때 가선 도대체 뭘 할 것인지... 도대체 어린 시절부터 얼마나 배운 게 없었으면 나이 서른 마흔 돼서도 그놈의 짤짤이 놀음이나 하고 앉았을까.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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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7/11/19 21:17 | 세상에 침뱉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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