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15일
누군가에게 조언을 한다는 것.

여기저기서 '조언'을 해주는 친구들이 많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이 '조언'이라는 것을 해주는 친구들의 숫자는 많아진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전혀 많지가 않았는데, 어른이 되고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그렇게 돼버렸다.
물론 다들 말은 그렇게 한다. 다 너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라고. 너 생각해서 해 준 말인데 그걸 되려 고깝게 생각하면 서운하면서도 갑갑하다... 이런 말들을 한다.
나는 내게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이 정말 싫다. 의도가 아무리 순수했다 하더라도, 유감이지만 나는 노땡큐다. 안해줘도 된다.
조언이라는게 뭔가. 문제점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친구를 보고 옆에 있는 다른 친구가 안타까워서 제 3자의 입장에서 일깨워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겐 조언이 필요없다. 오만한 말 같지만, 나는 최소한 내 문제점을 내 스스로 깨닫지 못할 만큼 멍청한 놈은 아니기 때문이다. 조언을 해주는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내용은 다들 한결같고 또 뻔하다. 다 좋~은 얘기들이지 뭐. 하지만 어떤이가 스스로의 문제점을 타개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점을 깨닫지가 못해서가 아니라 행동을 하지 못해서(혹은 안해서)이기 때문이다. 제 3자로서 누군가에게 조언이라는 걸 할 수 있다면, '실행하라'는 조언이 최대의 조언이 될 수 있을 뿐이다. 그 이외엔 일체도 무의미하다.
솔직히 난 다른 친구들의 문제점이 보여도 절대 지적하지 않는다. 내가 그의 문제점을 지적할 만큼 전혀 내 앞가림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해서 '저 친구 정도면 스스로 알아서 인식하고 해결할거야'하는 신뢰감을 갖고 싶어서 일부러 지적을 안하기도 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내 친구들 모두...이십대 중후반에서 삼십대 초중반이다. 다들 자기만의 가치관, 자기만의 인생관을 다듬은 사람들이 아닌가.
여튼 요즘엔 만나는 친구들 마다 조언에 충고에 설교 뿐이다. 
다른 사람은 다 '이렇다'고 얘길 하는데 나 혼자만 '저렇다'고 한다면, 그건 과연 내게 문제가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일까? 혹은 한발짝 물러서서 '다는 아니지만 뭔가 문제가 있긴 있을 것이다' 정도도 포함이 되는 것일까?
누군가는 이런 나를 밴댕이 속으로 취급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내가 밴댕이라는 소릴 듣는 한이 있더라도, 최소한 내게 조언을 하는 그 사람만큼은 조언을 할때 기본적인 세련미를 갖춰줬으면 좋겠다. 제대로 된 예의범절을 배우지 못했거나 언어적 감각이 딸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직설적으로 '조언'을 한다. 이는 듣는 이를 몹시 불쾌하게 만드는 무례의 극치로, '과감'이니 '직언'이니 하는 빗좋은 표현 따위로 포장될 행동이 아니다. 최소한 성인이 되었으면, 그리고 듣는 이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그 사람이 스스로 깨닫도록 해 주는게 진정한 '조언자'가 행해야 할 가장 이상적인 행동이다. 난 여지껏 나의 부족한 점들을 내 스스로 깨닫도록 이끌어주는 친구들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그 정도까지 배려의 수를 구사할 줄 아는 친구들은, 적어도 내 나이 대에서는 희박했다.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것일까. 아니다. 나는 최소한 위와 같이 하려고 항상 노력하기 때문이다. 내 친구들이 나보다 능력이 떨어져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분명 아니다. 나는 전혀 특별하지 않으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면 성인이 된 인간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렇게...상대방을 대하는 성찰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그 상대방에 대해서 '조언'을 한다. 조언의 전제는 그 사람에 대한 관심이다. 그런데 관심이 있다는 인간들이...그렇게 촌스럽게밖에 행동하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이 점이 너무 싫다.
스스로의 발전, 스스로의 성찰에 태만하다 보니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 역시 지극히 상스러워진다. 무식한 사람일수록 과감하다는 말은 진리인 것이다.
앞으로 나는 내가 인정하는 몇몇 사람을 빼고는, 나에게 '조언'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무식배로 간주할 것이다.
# by | 2007/11/15 13:39 | 세상에 침뱉기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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